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콤니노스 왕조 (문단 편집) === 가문의 기원 === 11세기 동로마 제국의 가장 저명한 역사가인 [[미하일 프셀로스]]에 의하면 콤니노스 가문은 트라키아의 콤므[* Komme, 14세기의 다른 기록에 의하면 '콤니노스의 영지'라는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라는 고을에 기원을 둔 귀족 가문으로 완전한 그리스계 가문으로 추정된다.[* [[루마니아]]계 가문이라는 소수의견도 있지만 주류 학설은 그리스계 가문이다.] 대개 시조로 보는 인물은 [[바실리오스 2세]]의 신하였던 마누일 에로티코스 콤니노스이다. 바실리오스 2세는 치세 초반을 포카스, 스클리로스 등의 반기를 든 [[군벌]]들을 진압하는 데 쏟아부었고, 내부의 상황이 정리되자 [[불가리아/역사#s-2.1|불가리아 제국]], [[파티마 왕조]] 등 제국의 고토를 차지하고 있는 적들을 공격하고자였다. 그런 황제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영지에 묶여서 외침을 막아내고 고급 장교를 육성할 군사 귀족 또한 많이 사라져서 제국의 국방력이 약화될 것이 염려되었다. 그리하여 새로이 지방의 군사 귀족을 육성하면서도 반란의 위험을 가능한 줄이기 위해 으레 군주들이 그렇듯 황제와 가깝고 충성스러운 인물을 택하게 되었고, 이에 선택받은 인물들[* 바실리오스 2세의 내전과 원정에 관여하여 성장한 가문으로 콤니노스, 디오예니스, 달라시노스, 보타니아티스 등이 있지만 이 중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콤니노스와 달라시노스는 알렉시오스 1세 등극 당시 혼인 동맹을 맺은 두카스와 함께 후기 로마 황제들의 선조가 되었다.] 중 하나가 훗날 위대한 황제들의 시조가 되는 마누일 에로티코스 콤니노스이다. 이렇게 마누일은 [[소아시아]] 북부의 파플라고니아에 위치한 카스타몬, 또는 카스트라 콤니니[* Kastra Komneni, 라틴어로 콤니노스의 요새라는 뜻으로 현재 터키의 카스타모뉘(Kastamonü)이다. 이 영향인지 후대에 알렉시오스 1세와 요안니스 2세의 파플라고니아 원정의 주 목표가 카스트라 콤니니의 탈환이었다.]라고 알려진 도시 (현 터키 [[카스타모누]]) 근처의 영지를 하사받아 가문을 개창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